카이로스라고 하나님의 때를 나타내는 말이 있다.
예수님을 향하여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자신들을 위한 예수를 환영하던 이들도, 그리고 예수를 주라 고백했던 제자들 조차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보며
끝이라고
이제는 소망이 없다고 생각했을것이다.
'여기 까지 입니까?'
그리고 사흘이 흐른다.
물론, 장사한지 사흘만에 라는 것이 문자적으로 72시간이 아니지만…
왜? 그 사흘이 필요하였을까를 생각해 본다.
하나님이 바로 부활 시킬 능과 권이 없으심도 아닌데…
카톨릭에서 이야기 하는 그 시간동안 지하(?)에 다녀오셨다는 이야기도 있고
십자가에서 달리신 후 아리마데 요셉을 통하여 장지로 옮겨지고, 돌무덤을 준비할때까지의 시간도 걸렸을것이며,
그 앞에 병사들이 지킬 때 까지 시간도 필요했을것이며, 다음날 마리아가 올때까지 시간도 필요했을 것이며…
과연 그것때문에 사흘이 필요하였을까?
세상의 사물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로맨틱하심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와이프는
'하나님도 그 아들을 십자가에 오르게 하시고는 마음이 너무 아프셔서 그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하셨을 것'이란다.
물론, 왜 그렇게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사흘이란 시간은
십자가 까지 따랐던 이들이, 그리고 우리가
세상임금으로 예수를 바라보던 모든 것들을, 내가 필요한 것을 성취시켜주는 이로서의 예수를 따르던 바램들을
'이젠 끝이라고,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고백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러한 헛된 모든것이 turn down되어진 연후에
그리고 사흘째 아침에
새로운 소망~!
부활의 소망으로
거듭나지 않았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