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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thing to think

위로부터...

"위로 부터" 라고 하면 처음 생각나는 것이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이다.

사람이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느냐고 물었을때, 

예수님은 거듭남(다시 태어남)-"위로 부터" 을 이야기 하셨다.


요즘(근 ..몇년) 신앙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자리에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야야 하고, 또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만 하는가 라는 이야기들이었던것 같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들이고 필요한 이야기들이고 또 필요한 이야기들인것이다. 


그러면서 한편 생각이 드는것은...

우리쪽에서 어떻게 해야하는것 훨씬 이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어떻게 하시고, 또 그렇게 하셨기에 자연히 나타나는 반응('그러므로' 이후에 어떻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의 반응이 아니라 자연히 되어지는)으로서 것들로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살아나가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그러므로"라는 단어로 이어지는 앞부분과 뒷부분의 내용들의 무게들을 생각해 보게된다.

보통 "그러므로" 앞부분에 나오는 것들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예수님이 어떠한 분인지, 또는 그분이 우리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나 하나님과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어떠한 존재인지의 부분들이 나오고 "그러므로"라는 어어지는 부분이 나온 이후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또 무엇을 해야하는지 등이 이야기 된다.

요즘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야기 하는이들의 (내가 만나는) 많은 이들은 그러한 부분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것들을 생각하고 있는듯 하다. 다시 말하자면 "그러므로" 이후의 것들에 보다 무게를 두고 있는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살아가는 이야기(우리가 해야만 하고 할수 있는 우리 들의 영역)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이루는 근본은 "그러므로" 앞부분에 있지 않을까?

우리의 영역이 아닌 "위로부터"로 대변되는 하나님의 하나님되심과 그분이 일하시는 것들에 대한 것들을 믿고 또 거기에 바탕을 두고 살아가며 그분의 일하심을 더욱 밝히 알고 의지하는 것이 내게 그리고 요즘 신앙의 고민을 가지는 이들에게 보다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우리의 노력이나 수고로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의 것- 예를들어 "부활"과 같은 것- 그것은 우리로 부터 제너레이트 되거나 흉내 내어질 수 없는것이기에 온전히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으로 부터의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것이 아닌가 싶다.


위로 부터
위로부터
위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