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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에쓴 증서 "의문에 쓴 증서"라고 하면 사도 바울이 "율법"에 대해 나타낼때 쓴 표현이다. 오늘 그 "의문에 쓴 증서"라는 것의 위력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법률적으로 문제가 생겨 서류에 적힌데로 어쩔수 없이 이행 하여야 하는 친구와 함께 하는 경험을 하였다. 내가 무슨 능과 권이 없기에 이기도 하지만 내가 그 법률적인 문제를 나서서 해결해줄 어떠한 방법도 없고, 그 문서에 적힌 내용앞에서 무력해 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 증서에 적인 내용을 이행하지 말라고 하고 싶고, 또 그렇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허무하게 그 문서가 시키는 데로 따를 수 없는 친구의 모습과 나의 모습을 직면하게 되었다.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구나'… 하는 절망감과 함께… 하나님께서 우리에.. 더보기
공동체? 최근 성경묵상 질문중 '교회가 성경공부 모임이나 선교단체와의 다른점은 무엇인가?'라는 것이 있었다. 물론, 교회를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것에 따라 교회의 모습이 달라지겠지만 일반적으로 그 본연의 역할을 보기만 하더라로 성경공부모임이나 선교단체가 교회가 되기에는 필요조건이 될수는 있지만 충분조건은 아닌것 같다. 그렇지만 교회를 비롯하여 많은 그리스도 공동체가 우리가 에베소서에서 바라보며 생각하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 그 지체들로서 서로 유기적으로 살아가는가? 다시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것 같다. 한 성령안에서 서로 연대성을 가지는가? 그리고 그 부름받은 바에 맞게 부합하게 공동체가 나아가느냐? 부름 받은 공동체, 보냄받은 우리 에베소서 4장 1~4절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 더보기
고소순응과 고도순화 등산에 대해 잘 모른다. 한국에 살때 집 뒤에 있는 산에 오르는 정도를 등산이라고 한다면 몰라도... 전에 다른 분의 블로그를 보면서 산을 좋아하는것이 어떤것일지에 대해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적이 있다. 그중 "climatizing" 이라는 글이 생각이 난다. 높은 산에 올라갈때는 고소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러한 등산을 신자의 삶의 여정에서에 비유해서풀어나간 글은 아직은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신앙생활이란 이런것이 아닐까 하는 여렴풋한 그림을 제공해 주었다. (http://shiker.tistory.com/entry/Climatizing) 신자의 삶이란 등산에서 만나게 되는 고소와 어떤면에서 유사한것이 아닐까? 평지에서 누리고 있던 것들을 모두 하면서 생활하기.. 더보기